내 마음 속에 공허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을 찾고 있다는 증거다.
by 냉이
캘리포니케이션 (Californication, Showtime)

미국 방송계는 매년 9월 셋째 주 전후로 일제히 시즌이 시작되어 이듬해 5월 말 전후로 시즌이 끝난다. 이것이 미국 네트워크가 돌아가는 기본 시스템이다. 시즌이 끝나면 보통 네트워크는 6월부터 9월까지 짧게 방송할 수 있는 리얼리티 쇼를 주로 편성한다. 이러한 경향은 케이블 채널도 마찬가지였으나, 언제부터인가 확 달라졌다. 네트워크가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케이블은 이 시기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TNT의 인기시리즈 <클로저>나 USA의 <탐정 몽크>, FX의 <쉴드>나 <레스큐> 등이 이 시기에 편성되는 시리즈라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오프시즌은 케이블 채널들의 행진이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해인 듯 볼만한 작품들이 6월부터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TNT는 <사랑의 마을 에버우드>의 트리트 윌리엄스를 내세워 새 메디컬 드라마 <하트랜드>를 월요일 8시에, 이어서 <클로저> 시즌 3을 9시에 편성해놓았으며 바로 이어서 홀리 헌터가 주연한 새 형사 시리즈 <세이빙 그레이스>를 편성했다.

또 FX는 글렌 클로즈가 주연을 맡은 <데미지스>를 새롭게 편성했고 AMC는 <매드 멘>을 편성해 주목 받고 있다. USA 역시 <번 노티스>라는 새 시리즈를 방송 중에 있으며 이미 시즌 2 제작이 발표된 상태이다. 이보다는 한발 빠르게 방송한 미니시리즈 <스타터 와이프>는 오는 9월 16일에 있을 에미상 시상식 미니시리즈 작품상 후보로 올라 있을 뿐만 아니라, 데브라 메싱이 미니시리즈 여우주연상, 조 만테냐가 남우조연상, 주디 데이비스가 여우조연상에 각각 노미네이트되어 있다.

Lifetime에서도 <아미 와이브즈>에 이어 릴리 테일러가 주연한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방송하고 있는 등 그야말로 올 여름은 케이블 채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올 여름 꼭 주목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Showtime의 <캘리포니케이션>이다.

같은 유료 채널임에도 HBO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뒤쳐져 있던 Showtime이 <퀴어 애즈 포크>를 시작으로 <엘 워드>, <슬리퍼 셀>, <덱스터>, <브라더후드> <위즈> 등의 히트 시리즈를 내놓으며 그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지는 프로그램이 <캘리포니케이션>이다.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타이틀로 쓰인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cation)>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참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연상시키는 타이틀이다.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앨범 <캘리포니케이션>이다. 여기에서의 <캘리포니케이션>은 <캘리포니케이션化>라는 의미로 92년 밴드를 떠났던 존 프루시안테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 밴드에 복귀해 제작한 앨범으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최고 히트작이다.

두 번째로는 californicate가 지닌 사전적 의미이다. 도시화, 공업화로 인해 경관을 해치다, 황폐화시키다라는 이 단어의 명사형(?) 정도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는 무대가 캘리포니아인만큼 캘리포니아(California)와 간음, 사통이라는 뜻의 포니케이션(fornication)의 합성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상 <캘리포니케이션>은 이 세 번째를 연상시키기 위한 것 같다.

뉴욕 출신의 베스트 셀러 작가 행크는 "God Hates Us All(이것 역시 미국의 메탈 밴드 Slayer의 2001년 앨범 타이틀을 연상시킨다)"라는 자신의 저서가 영화로 제작되게 되면서 헐리웃으로 옮겨 온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은 순식간에 탐 & 케이티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A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라는 로맨틱 코미디로 전락해버린다. 영화는 자기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작되었고 십 수년간 함께했었던 엑스 걸프렌드(카렌)는 웬 시덥잖은 녀석과 결혼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한다. 여기에 한 술 더떠 카렌의 약혼자 16살 먹은 딸 미아와 엉겁결에 잠자리까지 한다. 그리고 카렌과의 사이에서 생긴 딸 베카는 한참 예민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현재 행크가 안고 있는 상황이다.

행크는 이런 상황이 못내 짜증스럽고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자기에게 화가 나 있다.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게 되고 약에 절고 그저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이나 즐기는 불쌍한 신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신이, 이런 생활이 절망적인 건 아니다.

한바탕의 유명세를 치른 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칠대로 지쳐 매사에 시니컬하고 퉁명스러운 행크를 <엑스 파일>의 멀더, 데이빗 듀코브니가 연기한다. <엑스 파일>의 신화를 이룬 데이빗 듀코브니는 어찌 보면 <캘리포니케이션>의 행크와 닮았다. 시즌 8에서 도중 하차한 후 여기 저기 잠깐 게스트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은 못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캘리포니케이션>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데이빗 듀코브니와 Showtime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엑스 파일> 이전에 데이빗 듀코브니는 잘만 킹이 제작하고 Showtime에서 방영한 <레드 슈 다이어리(Red Shoe Diaries)>라는 끈적하고 질펀한 에로티카/소프트코어 TV시리즈에 출연한 바 있다. 그리고 <엑스 파일>이후 다시 Showtime과 인연을 맺은 데이빗 듀코브니는 역시 소프트코어 TV시리즈를 선택했으나 <레드 슈 다이어리>식의 질펀거리는 쇼가 아닌, 좀 더 경쾌한 템포의 위트 넘치는 성인식 코미디 <캘리포니케이션>을 선택했다.

원래 <캘리포니케이션>의 크리에이터인 톰 카피노스(Tom Kapinos)는 <캘리포니케이션>의 기획 당시에는 영화로 제작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각본을 본 Showtime의 로버트 그린블랫(Robert Greenblatt) 회장은 Showtime의 인기 코미디인 <위즈>와 함께 고유 코미디 브랜드로 잘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해 TV 코미디 시리즈로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코미디 TV 시리즈로 탄생된 <캘리포니케이션>은 지난해 Showtime 시리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위즈(Weeds>와 함께 대대적인 이벤트 홍보에 힘입어 8월 13일 <위즈>(83만 뷰어)와 함께 방송을 시작, <위즈> 시리즈 프리미어가 기록했던 488,000 뷰어를 능가한, 55만 명의 시청자를 잡는 데 성공하고 Showtime의 코미디 쇼(scripted comedy)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언스크립티드 코미디 중에서는 뚱뚱한 여배우가 1위).

또 각 언론사의 비평도 호의적이었다.
시카고 선 타임즈의 도그 엘프먼은 섹시하고 재미있고 독창적이라며 한 해 최고의 쇼라는 찬사를 보냈고, 뉴욕데일리의 데이빗 비안컬리는 올 해는 아니지만, 올 여름 최고의 쇼로 추천했다.

물론 각 언론사의 반응이 칭찬일색만은 아니다. 뉴욕 타임즈의 알레산드라 스탠리씨는 "캘리포니케이션은 LA의 성(性)과 사랑에 관한 다크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전혀 어둡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며 유치한 성인 코미디라 평했다. 게다가 오스트럴리아 헤럴드 썬의 칼럼리스트 앤드류 볼트(Andrew Bolt)씨는 파일럿에서 보여지는 수녀의 오럴 섹스 장면을 혹독하게 비평하기도 했다(참고로 <캘리포니케이션>은 미국의 Showtime뿐만 아니라, 같은 날 캐나다의 유료 채널인 TMN과 Move Central에서 방송을 시작했으며 오스트럴리아 Network Ten에서 8월 27일 방송을 시작했다. 또 영국에서도 다음 달 10월 11일부터 Channel 5와 Five US에서 방영예정이다).

확실히 처음 몇 에피소드는 필요 이상으로 노출씬과 섹스씬이 많다 싶다. 하지만 이것은 회를 거듭할수록 분명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케이션>의 처음 몇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노출과 섹스는 결코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않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우울하다. 단순히 <캘리포니케이션>을 흥미위주의 쇼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뻔히 보이는, 탐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부부를 연상시키는 영화 타이틀하며 '헬A 매거진'하며 L.A.를 비하시키는 표현에 호들갑을 떨며 풍자를 거론하려는 게 아니라, 파일럿 마지막 장면에서 글을 쓰려고 앉은 행크가 결국 쓴 것은 'Fuck', 이 한마디인 것처럼, 자신의 의도와는 달린, < Got Hates Us All >이 < A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로 변질되어 버린 것처럼 <캘리포니케이션>에는 고뇌하는 중년남의 분투와 뒤틀리고 균열된, <위즈>와는 또 다른 면에서 위기에 몰린 가족상(像)이 담겨 있다. 이것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파일럿의 오프닝을 장식한 롤링 스톤즈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는 인상적이다.

출처: www.tv.co.kr
by 냉이 | 2007/09/05 21:24 | TV | 트랙백(1)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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